누구나 한 번쯤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느꼈을 때 자가진단키트를 사용해봤을 겁니다. 자가진단키트는 시약에 체액을 섞은 뒤 종이에 떨어뜨려 코로나 감염 여부를 알게 되는 원리입니다. 혹시나 빨간 줄이 2개(양성)일까 가슴 졸이며 이 종이를 바라보게 되는데요. 이 종이를 구성하고 있는 소재의 정식 명칭은 '멤브레인(Membrane)'입니다. 자가진단키트의 멤브레인은 코로나 바이러스 항체를 가지고 있는 바이오 멤브레인으로 항체와 항원(바이러스)이 만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바이오 산업의 성장과 팬데믹의 여파로 멤브레인 필터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물을 정화하는 수처리 분야나 실험실 등 각종 연구 분야에서도 멤브레인 필터가 사용됩니다. 문제는 멤브레인의 국내 공급이 일부 해외 기업에 쏠려 있다는 점입니다. 과점으로 인한 높은 시장 가격에, 해외에서 수입해 쓰다 보니 납기 또한 길어 원활한 구매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러한 멤브레인 필터를 국산화하기 위해 밤낮으로 매진하는 소부장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바로 온라인 제조 플랫폼 캐파(CAPA)의 고객사인 '움틀'(UMTR)입니다. 움틀은 국산 멤브레인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을 만들기 위해 캐파에서 제조업체를 찾고 있는데요. 캐파가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움틀 사무실에서 박성률 대표를 직접 만났습니다.
움틀의 영문명 'UMTR'은 'United Membrane Technology and Research'의 약자로 구성원이 힘을 합쳐 멤브레인을 연구 개발해나가자는 미션을 담고 있습니다. 한글명 '움틀'은 'UMTR'의 발음과 '싹이 새로 돋아 나오기 시작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움트다'에서 착안했습니다. '움트다'의 또 다른 의미로 '운이나 생각 따위가 새로이 일어나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감행한 박성률 대표의 창업 과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박성률 대표는 대학원을 거쳐 롯데케미칼에서 멤브레인 기술을 연구했습니다. 이후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하 산기평)으로 이직해 바이오 분야 평가를 담당하며 관련 산업의 변천사를 지켜봤습니다. 당시 바이오 의약품과 체외진단기기 산업이 주력으로 떠오른 가운데 멤브레인이 핵심 부품으로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멤브레인이 필요한 수요 기업은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고 해외 공급 기업의 높은 가격과 긴 납기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박 대표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창업을 결심하고 산기평의 사내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멤브레인 필터 개발은 고도의 기술과 전문 지식이 요구되고 초기 자본 투자를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큰 사업입니다. 그럼에도 국가 기반의 중요한 사업이라는 회사의 인정을 받은 박 대표는 현재 산기평의 창업휴직 제도를 통해 움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움틀이 내세우는 가치는 '상생'입니다. 더 나은 삶을 개척하는 바이오 산업의 소부장 스타트업으로서 인류의 발전을 돕는 것을 원동력으로 삼습니다.
현재 움틀의 대표 제품군은 세균제거용 제품인 보틀탑필터와 원심분리여과기, 체외진단용 소재인 NC멤브레인입니다. 세균제거용 필터 제품은 원래 쓰이는 멤브레인 소재에 친수성을 더해 물에 더 빨리 젖고 그만큼 더 빠르게 여과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필터를 제조할 때 많은 양의 오염수가 발생하는데 움틀은 독성이 매우 낮은 물질을 사용해 오염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박성률 대표는 제품의 품질과 함께 친환경 요소도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보통 제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용매 물질, 장갑 등은 대부분 일회성 소모품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로 분류되어 소각됩니다. 박 대표는 과거 대학원 시절부터 이에 대한 부채 의식을 느꼈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기 위한 연구인데 이 과정에서 낭비되는 자원을 볼 때면 정말 이로운 일을 하는 것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 박 대표가 창업을 한 이유이자 움틀의 존재 이유가 됩니다. 멤브레인 생산의 국산화가 이루어진다면 바이오 산업의 성장도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움틀은 멤브레인 제품을 만듦과 동시에 인류와 세상이 진일보하는 계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움틀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필터의 금형입니다. 박성률 대표는 수처리 등 이미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카트리지 필터의 기성품을 구매해 사용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해당 금형을 취급하는 제조업체를 찾기 어렵고 카트리지 금형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체는 선뜻 협조해주지 않아 난색을 표합니다.
박 대표는 금형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더 좋은 멤브레인 제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인류의 발전을 함께 이뤄갈 제조업체를 만나는 것이 캐파를 이용하는 목적입니다. 박 대표는 멤브레인 필터 생산을 자동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제조업체, 무엇보다 도전 정신으로 함께해나갈 제조업체를 만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움틀은 2025년 매출 목표 100억원, 이듬해인 2026년에는 소부장 특례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상장 후 대규모 양산시설을 갖춰 멤브레인 국산화를 넘어 수출까지 바라본다는 계획입니다. 다음은 박성률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어셈블리(원재료를 수입해 가공한 제품을 수출하는) 산업을 영위했습니다. 다만, 원재료를 가공하는 부품이나 장비는 미국, 일본, 독일 등에 의존해왔습니다. 과거 자유무역이 활발한 시절에는 이러한 산업구조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현재는 전략물자 확보가 매우 중요한 환경이 되었습니다. 바이오 의약품과 체외진단기기 산업도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바이오 산업용 멤브레인 제품은 더더욱 국산화가 어려웠고, 전략물자화로 인해 수입이 어려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의 움틀을 창업했습니다."
"예전에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저희 제품을 납품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셀트리온과는 신한스퀘어브릿지 프로그램에서 인연을 맺어 2년 넘게 제품 개발에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보틀탑필터 제품에 대한 테스트를 직접 셀트리온이 생산한 배양액을 토대로 진행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는 올해 필터 개발을 의뢰해 현재 진행 중입니다. 점차 완성도를 높여서 두 고객사 모두 최종 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흔히 '선택과 집중을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저는 여러 제품을 동시에 개발했습니다. 당초 계획은 바이오 의약품 중심이었는데 코로나19가 창궐한 탓에 진단키트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바뀌었을 뿐 보틀탑필터나 원심분리여과기 연구를 중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엔데믹이 다가오고 진단키트 시장에 비해 세균제거용 필터 수요가 증가했을 때 다시 우선순위를 조정해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스타트업으로 시작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게 다 처음이라 어렵기도 하고 생소한 분야다 보니 투자자나 연구과제 담당자 분들도 어려워하십니다. 그래도 국산 멤브레인을 접한 많은 분들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 '성공해서 산업의 기반이 되면 좋겠다' 등등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십니다. 기관이나 정부 측에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일단 저희는 카트리지 필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플라스틱 하우징이 조립된 구조인데 금형만 최대 7개가 필요해요. 사실 바이오 산업이 아닌 수처리 쪽 산업체에서 이미 필터 제작이 이뤄지고 있는데 저희가 해당 제조업체와 직접 컨택할 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바이오 산업용 멤브레인을 만들기 위한 제조설비를 수소문했지만 '이런 제품은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캐파를 통해서는 저희와 협업할 수 있는 파트너를 꼭 만나고 싶습니다. 기성품 제조 경험이 있는 파트너, 클린룸 사출이 가능하고 나아가 자동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싶은, 그런 도전정신이 있는 파트너와 함께 서로의 비즈니스를 더욱 고도화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움틀의 제품은 바이오 산업을 위해서도,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정책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입니다. 어렵지만, 움틀은 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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