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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제조업 플랫폼 증시 입성, 우회 상장이 대세인 이유는?

2021/10/08

네덜란드의 필립스에서 분사해 3D프린팅 분야의 대표 제조업 플랫폼이 된 쉐이프웨이즈(Shapeways)가 지난 9월30일 뉴욕 증시에 상장했습니다. 앞서 쉐이프웨이즈는 뉴욕증시에 상장된 SPAC(기업인수목적회사)과의 합병 소식을 알리면서 증권 시장 입성을 알렸습니다. 상장 이후에도 기존 쉐이프웨이즈 경영진이 회사를 이끌기로 했습니다.

쉐이프웨이즈는 아직까지는 시제품이나 소량생산 등에 주로 사용이 국한돼 있는 3D 프린팅을 '대량 생산(mass production)'에도 적용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는 회사입니다. 실제로 최근 HPMJF 방식 3D 프린터나 Carbon DLS 방식 3D 프린터의 등장으로 3D 프린팅의 생산속도와 비용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평가입니다. 이같은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지난 2월까지 쉐이프웨이즈를 통해 생산된 3D 프린팅 부품 수는 약 2000만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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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0일 미국 뉴욕증시에 우회상장한 3D프린팅 제조 플랫폼 '쉐이프웨이즈'. <사진: Shapeways 홈페이지>

현재 미국 증시에는 쉐이프웨이즈 외에도 SPAC을 통한 상장 계획을 밝힌 제조업 플랫폼들이 적지 않습니다.

SPAC은 미리 증시에 상장한 뒤 유망한 비상장 기업을 찾아내 인수합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입니다. SPAC과 합병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복잡한 상장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증시에 상장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SPAC을 운영하는 회사들은 아직 상장되지 않은 기업 가운데 그만큼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기업들을 찾아내 합병하기 마련인데, 이런 점에서 최근 SPAC을 통한 제조업 플랫폼의 상장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시장에서 제조업 플랫폼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Fathom' 등 SPAC 합병으로 1.7조원 이상 기업가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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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량 규모의 부품 생산에 특화된 제조업 플랫폼을 운영하는 '패덤'. <사진: Fathom Digital Manufacturing 홈페이지>

고객에게 주문 받은 부품을 3D 프린팅을 비롯한 최신 가공방식을 이용해 신속하게 생산, 전달하는 제조업 플랫폼인 패덤 디지털 매뉴팩처링(Fathom Digital Munufacturing, 이하 '패덤')은 지난 7월 역시 '알티마 합병회사'란 SPAC과의 합병 계획을 밝혔습니다. 합병회사의 규모는 약 15억 달러(약 1.8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입니다.

특히 현재 패덤의 대주주는 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북미 지역 제조업과 산업기술 분야에 주로 투자하는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인 '코어 인더스트리얼 파트너스'입니다. 이번 합병 이전부터 비상장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을 정도로 투자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패덤과의 합병 계획을 알린 알티마의 CEO 톰 와서먼은 이번 합병과 관련한 언론 인터뷰에서 "점점 더 많은 회사들이 주문형 제조의 이점을 깨달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패덤은 이미 수 년에 걸쳐 (제조업 플랫폼) 경쟁자들이 침입할 수 없는 진입 장벽을 구축해놨다"고 말했습니다. 패덤은 이번 합병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동종업종의 규모가 작은 회사들을 인수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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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제조 플랫폼'을 표방하는 '패스트 레이디어스'. <사진: Fast Radius 홈페이지>

미국의 또다른 제조업 플랫폼 패스트 레이디어스(Fast Radius)도 SPAC을 통한 합병 계획을 밝히면서 합병 후 기업가치는 14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패스트 레이디어스는 지난 2017년 컨설팅회사 맥킨지 출신 공동창업자 등이 미국의 거대 물류회사인 UPS와 손잡고 3D 프린팅에 특화된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설립한 스타트업입니다. 현재 자체적으로 시카고 본사를 비롯해 미국 각지에 산업용 3D 프린터를 다수 보유한 것을 비롯해 전세계 각지에 CNC 가공, 판금, 사출성형 등 다양한 제조 공정을 수행할 파트너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에서 고객의 주문을 받아 처리하는 시스템을 '클라우드 제조 플랫폼(Cloud Manufacturing Platform)'이라고 부르며 클라우드 컴퓨팅의 이점을 제조업 시장에도 적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주요 고객으로는 세계 최대 치약 제조업체인 콜게이트-팜올리브(Colgate-Palmolive)와 야구 글러브 생산업체인 로울링스(Rawlings) 등이 있습니다.

3D프린팅업체도 우회상장 잇따라···국내선 CAPA 이용 활발

최근 SPAC의 구애에 시달리는 것은 제조업 플랫폼만이 아닙니다. 3D 프린팅업체들도 잇따라 SPAC과의 합병을 통해 증시에 입성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산업용 3D 프린터를 생산하는 스타트업 데스크톱 메탈(Desktop Metal)이 SPAC 합병을 통해 뉴욕 증시에 상장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 7월엔 역시 산업용 3D 프린터 제조업체인 마크포지드(Markforged)가 SPAC과의 합병을 통해 뉴욕 증시에 상장됐습니다. 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3D 프린터를 제조하는 벨로3D(Velo3D)도 SPAC과의 합병 계획을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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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톱 메탈의 금속 프린터(왼쪽)와 마크포지드의 산업용 3D 프린터 X7. <사진: Desktop Metal, Markforged 홈페이지>

최근 SPAC을 통해 상장했거나 상장 계획을 알린 제조업 플랫폼과 3D 프린팅 업체들은 최신 IT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제조업 시장을 혁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특히 이들이 우선적인 타깃으로 삼는 시장은 기존 거대 제조업체들이 지배하고 있는 대규모, 대량생산 시장이라기 보다는 중소량, 맞춤형 부품시장입니다.

대표적으로 앞서 소개한 패덤의 경우 250억 달러 규모의 중소량 제조시장(low-to-mid-volume manufacturing market)을 타깃으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 리스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전에는 시장의 관심을 갖지 못했던 이와 같은 틈새시장이 제조업 분야의 성장을 견인할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제조업 플랫폼 등과 SPAC간의 합병이 전통적인 기업공개(IPO)의 대안(alternatives)이 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이같은 투자 방식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당장의 매출에 신경쓰기 보다는) 미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일정한 재무기준을 달성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IPO를 통한 증시 상장에 비해 SPAC을 통한 우회상장이 가치를 인정 받기가 더욱 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칭 제조업 플랫폼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조메트리(Xometry)처럼 전통적인 IPO를 거쳐 증시에 입성하는 방식을 택한 경우도 있습니다. IPO에 자신이 있다면 SPAC을 통한 우회상장보다 더 많은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어떤 방식이 되었든 최근 글로벌 제조업 플랫폼들이 잇따라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이웃 일본에서도 지난 2017년에 창업한 제조업 플랫폼 캐디(Caddi)가 시리즈B 투자에서 7300만 달러(약 850억원)를 유치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지역을 막론하고 현재 시장이 제조업 플랫폼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제조업 플랫폼에 대한 관심이 한층 고조되고 있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제조업 플랫폼인 캐파(CAPA)를 월별 고객 주문은 지난달 두 달 연속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특히 전통적인 고객군이었던 하드웨어 기업이나 대학, 연구소 외에도 금융회사, 병원, 심지어 방송용 콘텐츠 제작사 등으로 고객군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캐파는 조만간 도면의 보안성을 강화한 '블러링' 기능을 탑재하는 것을 비롯해 고객과 파트너(제조업체)간 도면을 통한 소통을 보다 원활하게 해줄 '캐파 커넥트', 즉시 견적 등의 기술을 차례로 적용해 나갈 계획입니다.

제조업 플랫폼이 바꿔놓을 제조업의 미래가 우리 곁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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