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2+등급 채끝살 패티와 트러플 페코리노 치즈, 12년산 발사믹 식초를 사용한 ‘14만 원짜리 햄버거’. 최근 서울 잠실에 상륙한 ‘고든 램지 버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먹방 유튜버와 연예인 할 것 없이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레스토랑에 다녀가고 있는데요. 값비싼 가격에도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파격적으로 비싼 가격이 호기심을 당기는 요인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건 유명 셰프 ‘고든 램지’의 레시피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의 음식을 서울에서 맛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꽤 치명적인 자극입니다.
사실 잠실 레스토랑에 고든 램지 셰프는 없습니다. ‘고든 램지 버거’ 관계자는 캐파(CAPA)와의 전화 통화에서 “셰프님께서 오셔서 레시피를 알려주신 기간이 있었다”면서도 “셰프님은 현재 (본국으로) 돌아가신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레시피가 있기에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표준화된 레시피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운영의 핵심입니다.
1977년 대한민국 명동. 우리나라 최초의 외식 프랜차이즈 ‘림스치킨’이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문을 열었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외식 문화가 낯설었던 시절, 같은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방문하면 똑같은 맛의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음식 문화에 있어 적지 않은 의미를 가졌죠. 특정 지역의 음식을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음식에 있어서도 지역적 '형평성'이 가능해졌다는 의미기 때문입니다.
림스치킨에 이어 1979년에는 국내 최초의 커피전문점 ‘난다랑’이 종로구 동숭동에 설립됐고, 1979년 최초의 해외 프랜차이즈 ‘롯데리아’를 시작으로 1984년 ‘버거킹’, 1985년 ‘피자헛’까지 프랜차이즈의 본격적인 확산이 시작됐습니다.
2022년의 성수동. 약 반 세기 전 림스치킨이 가져다준 음식 문화의 혁신을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반 세기의 시간이 흐른 만큼 스케일도 전국 단위를 넘어 전지구적 수준으로 확대됐습니다.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음식 문화의 진보를 꿈꾸는 로보키친 스타트업 ‘웨이브라이프스타일테크(이하 웨이브)’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웨이브라이프스타일테크는 로봇 기술을 이용해 전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은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어떻게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지난 13일 서울 성수동 웨이브라이프스타일테크 사무실에서 김범진 대표를 만나봤습니다.
김범진 대표는 요샛말로 ‘먹깨비’입니다. 사업을 시작한 배경에 대해 묻자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먹는 걸 좋아해서”라고 답합니다. 먹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쉑쉑버거' 청담점에서 한동안 쉴 새없이 패티를 구워보기도 했다는 그입니다. 웨이브라이프스타일테크에는 김 대표 외에도 “먹는 것에 정말 진심”인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합니다. 직원들의 이력을 보면 KFC부터 치즈 공장, 떡 공장까지 아주 화려합니다.
쉑쉑버거 청담점에서 일하던 시절, 점심시간을 맞아 손님들이 한바탕 폭풍처럼 몰아치고 나간 뒤 기름과 물아일체가 된 김범진 대표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음식 하나를 만들어내기까지 주방 일은 정말 고되다는 사실을 말이죠. 식재료 관리부터 직원관리까지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뭐 하나 쉬운 게 없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고 합니다. 김범진 대표는 “주방 관리에 기울일 노력을 아껴 음식 퀄리티 향상에 투자할 수 있는 요식업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며 회사를 세운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로봇을 주방에 도입하는 '로보 키친'에 대해 일각에서는 결국 ‘로봇이 인간 요리사를 대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웨이브라이프스타일테크의 목적은 로봇이 주방 운영을 도와줘서 요리사가 음식을 연구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로봇의 기능을 주방 운영을 도와주는 역할에 국한시키자’ 는 것이죠.
실제로 주방 운영의 어려움에 골머리를 앓던 업계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김 대표는 “주변 식당 사장님부터 미쉐린 스타 셰프,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 먹방 여성 유튜버까지 웨이브라이프스타일테크를 찾아주고 계신다”며 “고객 중에 주방 관리보다는 신메뉴 등 아이디어 개발에 힘을 쏟고 싶어하시는 분들, 브랜드 런칭을 준비하는 젊은 요식업 사장님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아래는 김범진 대표와의 일문일답.
"(로봇이 만든 음식이 더 맛있을 수 있다는) 실제로 증명된 결과가 있습니다. 한때 샐러드 브랜드를 자체적으로 운영했었는데요. 이 브랜드는 배달 서비스만 제공했었고, 초기 3개월까지는 사람이 샐러드를 제조했어요. 이후에는 로봇을 샐러드를 만들었고 ‘로봇이 만드는 음식’이라는 사실을 오픈하지 않았죠. 배달 서비스니까 고객 분들은 모르시는 거에요.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로봇 도입 전후로 브랜드 별점을 비교해보면, 5점 만점에 3.5점에서 4.9점으로 대폭 상승했어요. 로봇 도입 전에는 ‘양이 적어졌다’는 리뷰가 종종 있었지만, 도입 후에는 양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었고요. 로봇은 무게 센서를 이용해 정확한 양의 재료를 정확하게 조리하니까 당연한 결과였죠."
"음식을 다루는 조리 로봇들은 우선 깨끗해야 합니다. 재료가 담기는 플라스틱 컨테이너는 물이 새면 안 되죠. 재료가 손상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매장마다 손님 숫자에 따라 보관될 재료의 양이 달라져요. 손님이 적은 매장이라면 컨테이너 크기를 줄여야하기에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컨테이너 제작이 필요했어요.
가장 구현하기 힘들었던 건 청경채나 오리고기처럼 얇은 재료들을 뿌려주는 엔드 이펙터(음식재료를 집거나 배출하는등 마지막 단계의 작업을 하는 부품을 가리킴)였어요. 물레방아 모양으로 생긴 엔드 이펙터는 재료를 배출하면서도 재료를 짓이기지 않아야 했어요. 재료가 손상되지 않는 구조와 부품 재질을 선택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식재료의 특성에 따라 스크류 타입, 피스톤 타입, 물레방아 타입 등 배출 방식을 결정해야 하는데 10번 정도의 실패는 필수 과정이었습니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리 로봇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다양한 시제품을 만들어보는 것이 필수입니다. 이 모든 걸 소규모 스타트업이 직접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도와줄 제조업체를 찾아 협업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웨이브가 온라인 제조플랫폼 캐파(CAPA) 서비스 런칭 초기부터 '단골'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캐파를 통해 제작 과정에 도움을 받은 로봇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김 대표는 "직접 보시는 게 이해하기 편할 거다"라며 동영상을 켰습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샐러드볼은 천천히 움직였고, 샐러드 재료들이 정해진 양만큼 샐러드 볼로 낙하하며 샐러드가 만들어졌습니다. 김 대표는 "캐파 서비스에서는 샐러드 재료가 담기는 플라스틱 컨테이너와 재료를 배출하는 '엔드 이펙터'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제품 개발을 위해) 여러 제조업체들을 하나하나 만나며 제품에 대해 설명했지만, 다들 음식을 다루는 제품은 처음이라 디테일한 요구를 까다로워하셨어요. 다른 제조 플랫폼도 이용해보고, 제조업체 10곳 정도를 정해놓고 미팅도 했지만, 마음에 드는 업체를 찾기는 쉽지 않았어요.
캐파 서비스는 굉장히 파트너 풀이 넓다는 장점이 있었어요. 제품 R&D를 위해 꾸준히 캐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제품을 의뢰할 때마다 새로운 파트너들이 채팅을 요청했어요. 하나의 제품을 만들더라도 더 잘 만들 수 있는 파트너들이 계속 유입되는 것 같아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습니다.
특히 주로 거래를 많이 했던 HA엔지니어링은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제품을 만들어주셨어요. 경상남도 소재의 업체지만 급하다고 하니 고속버스 퀵으로 하루 만에 제품을 배송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캐파를 통해 ‘HA엔지니어링’과 추가 거래를 이어나가고 있어요.”
”웨이브의 조리 로봇들은 특정 메뉴를 위한 로봇이 아니에요. ‘특정 재료’의 ‘특정 조리 작업’을 위한 로봇들이죠. 예를 들어 샐러드 제조에 주로 쓰이는 물레방아 휠 디스펜서 로봇은 샐러드뿐 아니라 채소부터 고기까지 다양한 식재료를 배분하는 조리 과정에 모두 사용될 수 있어요. 열판이 상하로 달린 스테이크를 굽는 로봇이라면 고기를 익혀서 만드는 다른 음식에 얼마든지 응용될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샐러드를 만드는 조리 모듈로 피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위에 샐러드볼 대신 피자 도우를 올리고, 벨트가 이동하면서 피자 토핑들을 하나하나 배분하는 방식인 거죠. 지금까지 웨이브가 만들기 위해 리스트업한 식재료만 1000가지에 달합니다. 이 중 300개는 이미 제조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어요. 조리 로봇의 유형도 앞으로 계속해서 연구해 확장해나갈 계획이에요. 새로운 재료와 조리 로봇들을 조합시켜 나가면 만들 수 있는 음식 메뉴는 무한대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영화 속에서는 로봇이 주방에 서는 장면이 낯설지 않습니다. 1999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ial Man)’에서는 가사 도우미 로봇 앤드류가 가족들에게 처음 요리를 선보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음식에서 약 맛이 난다”며 로봇이 만든 음식을 불신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로봇이 만드는 음식에 대한 인간의 편견을 드러내죠. 어찌 보면 이러한 편견이 웨이브 앞에 놓인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샐러드 사례처럼 '편견'을 제거하고 음식 맛을 평가하면 오히려 로봇이 만든 음식이 더 맛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특히 로봇은 '배식'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지닙니다. 김 대표는 얘기입니다.
“사실 로봇이 만드는 음식은 사람이 만드는 음식보다 판매 측면에서 유리해요. 완성된 음식의 편차가 적기 때문인데요. 로봇은 일정한 양을 일정한 조리 방식대로 만듭니다. 사장님 마음대로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아 고기를 많이 주고 어느 날은 고기를 적게 주는 일이 일어나지 않죠. 같은 식당을 다시 방문했을때, ‘이전에는 고기가 더많았는데 줄었네’라고 느낄 위험이 줄어든다는 것이죠.”
”스테이크 요리까지 가능합니다. 업계에 널리 퍼져있는 믿음 중에 ‘스테이크는 셰프들의 영역’이라는 숙제가 있었어요. 가장 큰 숙제니까 가장 먼저 해치우자는 생각으로 도전했어요. 스테이크는 굽기 정도에 따라 적절한 불 조절과 아로마 양, 적당한 뒤집기 등 매우 섬세한 조리가 중요한데요. 스테이크 역시 로봇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까다로운 조건들이 많았어요. 더욱이 조리 직전의 생고기는 소프트한 물성이라서, 달궈진 팬의 위치에 정확한 모양으로 놓는 작업부터가 매우 어려웠어요.”
”'그리퍼'(물체를 쥐거나 놓을 수 있는 장비) 대신 '디스펜서'로 문제를 해결했어요. 샐러드를 만들 때 사용했던 디스펜서 로봇을 연구하면서 잎채소, 다이스 고기, 스테이크 고기, 밥, 소스까지 다양한 물성의 재료를 넣고 분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었어요. 이 고민들을 바탕으로, 스테이크가 접히지 않으면서 정확한 팬의 위치에 놓일 수 있도록 하는 디스펜서를 개발해냈습니다. 디스펜서를 개발한 이후에도 최고의 맛을 낼 조리 방법을 고안하느라 6가지 고기 종류를 수백 번씩 구웠습니다.”
수백 번의 시도는 곧 수백 번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실패를 말하는 김범진 대표의 얼굴에는 실패를 맛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 뿌듯함이 흘러 넘쳤습니다.
김범진 대표에게 웨이브의 꿈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인터뷰 서두에서 언급했던 이야기를 다시금 꺼냈는데요, 어쩐지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기술이 혁신한 만큼, 음식 문화도 진보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방 노동이 완화돼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음식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언젠가 미국에 있는 유명 셰프의 스테이크를
웨이브라이프스타일테크 로보 키친에서 만드는 날이,
미국 스테이크를 한국에서 맛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이미 한 발자국 앞서 나간 기술의 빛이 아직 미치지 못한 음식 문화를 비춰주기까지. 웨이브의 ‘이유 있는 실패’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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