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개봉되는 소위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관람하다 보면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압도 당하곤 합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실제로 촬영되는 현장을 보게 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망하게 된다고 합니다. 배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면이 촬영 이후에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덧입혀지다 보니 실제 촬영 현장에서는 주연 배우를 비롯한 몇몇이 초록색 대형스크린을 배경으로 볼품없이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 속에서 CG로 대체해 넣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배우(물론 군중처럼 배경으로 사용되는 인물들은 CG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가 그렇고 배우들이 사용하는 소품도 그중 하나입니다.
특히 최근엔 영화에 사용되는 소품을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작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영화 촬영에 사용되는 소품은 굳이 여러 개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생산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화들 중에서도 3D 프린팅 기술로 소품을 제작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은 유명 영화 속 3D 프린팅 제품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난 후에는 영화 속 장면을 복기하면서 ‘와~ 이 소품들이 CG가 아니고 3D 프린터로 직접 만들어졌다고?’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마블 시리즈 중 하나인 <토르>에는 천둥의 신인 토르만 사용할 수 있다는 망치 ‘묠니르’가 등장합니다. 영화 속 묠니르는 신이 사용하는 도구답게 그 제작과정도 어마어마하게 복잡합니다. 그렇다면 영화에 사용된 실제 묠니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정답은 '3D 프린팅', 그 중에서도 '결합제분사(Binder Jetting) 방식의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입니다. 결합제분사 방식 3D 프린팅은 잉크젯 헤드를 통해 액체상태의 접착제를 선택적으로 분사해 금속을 비롯한 분말 형태의 재료를 한층한층 쌓아 나가며 제품을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묠니르는 금속을 원료로 출력 해야했기 때문에 이 방식을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독일의 Voxeljet 이라는 회사가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제작 과정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 묠니르의 탄생 과정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 토르야?' 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이번 사례 역시 이 영화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와 관련이 있는 만큼,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혹시 토르의 누나인 헬라가 멋지게 쓰고 있던 헬멧을 기억하시나요? 사슴뿔 혹은 거미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헬라의 헬멧은 실제 헬라 역할을 맡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머리를 스캔한 후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화 의상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인 'Ironhead Studio'에서 제작했는데요, 구체적으로 3D 프린팅 기법 가운데서도 SLS(선택적 레이저 소결) 방식이 사용됐습니다.
이는 재료가 되는 미세한 분말을 바닥에 깔아놓은 뒤 필요한 부분에만 레이저를 쏘아 굳혀가면서 제품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3D 프린팅 기술 중에서 상대적으로 제품 생산에 걸리는 시간이 적게 걸린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약 2kg의 무게가 나가는 헬멧은 여러 부분을 출력한 뒤 조립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헬라의 헬멧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 코스튬을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해 눈길을 끈 사례가 있습니다. 영화 <블랙팬서>에서 와칸다 여왕인 라몬다가 입고 나오는 드레스입니다.
영화 속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인 와칸다 특유의 문화를 표현하기 위해 드레스 디자인에 복잡한 문양이 많아졌고 그만큼 정밀함이 요구되는 제품이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에서 라몬다가 쓰고 있는 모자 장신구와 어깨에 두른 망토가 3D 프린팅 기술로 구현된 제품입니다. 위 헬라의 헬멧을 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SLS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D 형태의 디자인 패턴을 3D 프린팅 기술로 표현했다니, 정말 멋지지 않나요?
위에서 소개해드린 사례들은 영화 속 일부 소품들을 3D 프린터로 출력해 활용한 사례입니다. 이에 반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모든 사물을 3D 프린터로 제작한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2015년에 공개된 단편 애니메이션인 <Chase Me>입니다.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인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 악몽>과 마찬가지로 스톱모션 기법으로 촬영했습니다.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와 배경이 100% 3D 프린터 출력물로 제작됐습니다.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조각 수는 대략 2,500개에 달하며 출력된 제품 하나하나에 색을 칠하고 조립을 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조각들을 만드는 데에는 3D 프린팅 기술에서 가장 오래된 기술인 SLA(Stereo Lithography Appartus) 방식이 사용됐습니다. SLA 방식은 고가(高價)이지만 상대적으로 정교한 제품을 만드는 데 적합합니다. SLA 3D 프린터 제작에 특화된 'Formlabs' 사의 프린터로 제품을 출력했고, 최종 완성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아래 영상은 실제 영화의 메이킹 영상인데요, 아주 짧은 단편영화임에도 감독을 비롯한 스탭들의 정성과 인내가 담긴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환상적인 화면을 연출하는 영화 산업에서는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고, 창작자들의 머릿속에 있던 장면들은 전보다 더 빨리 더 적은 비용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어벤저스처럼 유명한 영화들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3D 프린팅 기술이 쓰였다는 점! 현실에서 3D 프린팅 제품이 일상화되는 날도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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